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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구도에 어색한 표정이 담긴 빛바랜 사진 한 장. 그 사진에는 흘러온,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이 모두 담겨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쩌다보니, 그들은 그렇게 모여 그 순간을 필름에 담았다.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 그리고 영화 '암살'의 의열단 단원들도.
아무생각 없이 삼일절 하루 잘 쉬고, 그렇게 흘러가던 어느 3월,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은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중국 하얼빈 땅에서. 그리고 부제를 붙였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시간>이라고.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의거. 1박2일 멤버들은 하얼빈에 남아있는 그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 시간을 느끼며 과거와의 접선을 시도했다. 거사 당일까지 머물렀던 동포의 집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하얼빈 역과 그 기차역 한 편에 마련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 그리고 뤼순 법원과 독방을 거쳐 그의 유해가 묻혀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한 야산의 비석 앞까지. 단순히 위대한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고,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이면서 또 아들이란 사실을 짚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연스레 영화 '암살'의 인물들이 떠올랐다.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가 찍힌 사진이 어느새 영화 속 의열단원들이 거사를 앞두고 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넘어갔다. 물론 영화 속 인물들은 더 다양하고 극적이다.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던 인물은 친일파로 변해 잘 살고, 처음에는 독립운동에 관심이 없었던 인물들이 결국 목숨을 내놓게 되니까 말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독립이던, 친일이던, 어느 한 쪽에 완벽히 치우친 사람들 보다는 그 둘 사이에서 생존하며, 시대를 따라 흘러가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물론 어느 쪽에 가까워지느냐에 따라 저항의 세기는 달라졌겠지만. 하정우(하와이 피스톨 역), 이정재(염석진 역) 같은 쟁쟁한 주연들 사이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전지현(안옥윤, 미츠코 역)이 부각될 수 있었던 시대적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를 나타낼 수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친일파 아버지와 독립운동을 돕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한 명은 독립운동가로, 다른 한 명은 친일의 혜택을 누리는 부잣집 딸이 된다. 뻔한 운명의 장난 같고, 지나치게 극적인 인물설정의 기운도 있지만, 그 시대를 상징적인 인물로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는 나름 설득력이 있다.
영화의 스토리를 단숨에 뛰어 넘어, 결국 그들은(의열단과 그들을 도운 이들) 모든 임무를 완성한다. 의열단에서 친일경찰이 된 염석진도 16년 만에 그들이 쏜 ‘의열의 총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어떻게 그들은 16년 동안 이 순간을 위해서 준비하며 기다릴 수 있었을까. 영화 속에서 김원봉(조승우 역)이 술잔을 기울이며 죽어간 동지들을 떠올리는 순간이 있다. "너무 많이 죽었어...... 미안하다....." 폭탄을 던지면서 죽음으로 끝까지 저항하던 동지들에게 김원봉은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누군가의 시간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며 저항의 그날을 준비하던 수많은 열사들. 그들이 우리가 꼭 기억했으면 하는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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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기억하는 '그 날'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마지막으로 부모님에게 절 한 번 올리고 싶어, 꿈속에서라도 만나 뵙기를 바라며 눈물을 훔치던 순간일지도. 자식들 얼굴을 만지며 볼 한 번만 부비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 같다고, 탄식하며 술잔을 기울이던 어느 날 밤일지도.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는 어머니의 편지를 독방에서 읽으며 찢어지는 마음으로 이 문장을 써내려갔을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한참동안 멍하게 고향 쪽을 바라보던 한 아들의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
김원봉은 아마도 그들의 이러한 시간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본이 패망했다는 감격적인 소식을 들은 후에도 슬퍼하며 나직하게 고백했을 거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잊혀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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