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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리뷰

슬라보예 지젝 / 후기 구조주의 / 실재로서의 증상 / feat. 라캉, 프로이트

by 낭만리뷰어 2022. 1. 3.

증상으로서의 [타이타닉]

 

증상으로서의 타이타닉을 언급하기 전에 지젝은 앞서 말한 변증법(실수가 진리에 내재하게 되고 요인이 실정적인 존재론적 차원을 가지게 되는 것)에 한계를 지적한다.

 

그 한계 → 상징화에 저항하는 실재 (일련의 다양한 전략으로 상징계 속에 통합시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되돌아오는 외상의 지점이다.  

 

타이타닉의 침몰은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으로 외상적인 효과를 가진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매우 상세하게 예견(로드, 1983, pp. ~)되어 있었다는 것이고 그 사실은 ‘사회적인 상상계’에 끔찍한 충격을 가했다.  

 

이러한 일치의 배경과 이유

세기의 전환점에서 그런 시대(1850 - 1차 세계대전까지 긴 평화로운 진보의 시기)의 종말을 형상화하는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거선이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타이타닉은 사회의 '자아-이상'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으로, 유럽 문명 자체의 다가오는 재난에 대한 은유적이고 응축적인 표상으로 읽혔다.

 

BUT, 이 모든 이야기들을 지젝은 진부한 이야기하고 한다. 그런 해석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타이타닉 호는 라캉적인 의미에서 은유적인 의미에서 설명될 수 없는 매혹의 힘이 있는 불가능한 향락의 물질화다. 결국, 이 무시무시한 충격은 의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라캉의 향락(jouissense)이다. 따라서 타이타닉 호의 잔해는 숭고한 대상(이데올로기)으로서 기능한다. 다시 말해, 불가능한 사물의 위치로까지 고양된 물질적, 실정적 대상이다.  

 

증상에서 증환으로  

증상이 왜 무()가 아니라 유()인가?

이 영원한 철학적 문제에 대해 라캉의 최종적인 해답은 존재하는(현존) 그것이 바로 증상이라는 것이다.  현존하는 현상들에 일관성을 부여해 주는 것이 바로 증상이다.

라캉이 50년대에 배제 개념을 도입했을 때 이는 어떤 중심-기표(누빔점)가 상징적 질서로부터 배제되어 정신병을 발동시키는 특수한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라캉의 가르침의 마지막 시기에 이 기능에 보편적인 범위를 부여했다. 기표의 질서 그 자체에 어떤 고유한 배제가 있어서, 우리가 어떤 상징적 질서를 갖게 될 때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중심으로 구축되며, 어떤 중심-기표의 배제를 함축한다는 것이다. 상징적인 구조화는 기표가 부재함을 함축하는 것이다.

“상징계로부터 배제된 것은 실재로서의 증상으로 되돌아온다”

 , 여자(기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기표는 근본적으로 배제되어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배제된)그녀는 남자의 증상으로서 되돌아온다.

 

증상의 출현과 해석 그리고 문제 발생 및 라캉의 답

증상의 출현 : 상징적인 소통의 회로가 끊어진 곳에서 출현. 일종의 ‘다른 방식을 통한 소통의 연장’

 

증상의 해석 : 실패하고 억압된 단어가 코드화 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은 증상이 이미 그 해석을 목표로 해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구조적으로 증상은 일관되고 완전한 큰 타자의 영역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증상은 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타자를 향한 호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증상을 해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증상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라캉의 답 : 향락 때문이다. 증상은 암호화된 메시지이면서 주체가 자신의 향락을 조직하는 한 가지 방편이기에 완전한 해석이 이루어지고 나서도 주체는 자신의 증상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증상과 환상의 대립

향락의 차원을 환상의 차원으로 부각하면서 일련의 변별적 특징들을 통해 증상과 환상을 대립시킨다. 

이렇게 함으로 정신분석 과정의 두 단계(증상의 해석/#환상을 횡단하기)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다.   

증상 환상
*분석가능
*빗금쳐지지 않은 일관된 큰 타자를 전제하여 그를 수   신인으로 삼음  
*분석될 수 없으며 해석에 저항
*빗금쳐져 봉쇄된, 전체가 아닌, 비 일관적인 타자를    전제. 다시 말해 타자 안의 공백을 채우는 것

 

증환으로서의 증상

증환으로서의 증상?

증상은 향락을 어떤 상징적인 기표 형성물과 하나의 매듭으로 묶어줌으로써 우리 세계--존재(being-in-the-world)에 최소한의 일관성을 보장해 주는 방법이다. 사회적인 유대의 네트워크 속에 포함될 수 없는 얼룩이지만 동시에 그러한 네트워크를 가능케 하는 실정적인 조건이다. 이 근본적인 차원의 증상이 해체되어 버리면 이는 말 그대로 ‘세계의 종말’을 의미한다.  

 

프로이트가 언급한 한 유명한 남성 우월론자의 이야기

그는 '증상'은 참을 수 없는 영원한 해악의 근원이지만, 여전히 우리가 그런 것 중에서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고 말했다. '증상'이 없다면 상황은 더 좋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증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도 '증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증상'에 불과할 것이다.

 

억지로 정리를 마치고

후기 구조주의의 사상들은 대부분 읽으면서 동시에 머릿속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다. 사실 이해가 잘 안 돼서, 단어들이 금방 안개처럼 사라지는 기분이다. 지적인 도전에 열망이 있다면 한 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해가 안 가도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아마 대부분 그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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