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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리뷰

오만한 제국 1 / 1장-5장 맛보기 / 이데올로기 / 미국의 외교정책 / 폭력과 인간 본성 / 역사의 이용과 오용 / 정당한 전쟁, 부당한 전쟁

by 낭만리뷰어 2021. 12. 30.

차례 

1. 서문: 미국의 이데올로기

2.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와 미국의 외교정책: 수단과 목적

3. 폭력과 인간 본성

4. 역사의 이용과 오용

5. 정당한 전쟁, 부당한 전쟁

 

1. 저자(하워드 진)의 서문

미국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지 말고, 우리 시대의 인간적인 문제들에 관해 새롭고 창의성 넘치는 접근 방법을 반드시 창출해 내야만 한다. 민주주의를 소생시키기 위하여 이러한 과제들을 시민들이 스스로 풀어나가거나, 현대세계가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들에 대해 위대한 사상가와 전문가들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참조하면서 시민들 자신의 입장에서 사고해야만 한다.

 

2.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와 미국의 외교정책 사이의 연관성: 수단과 목적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와 미국의 외교정책은 동일하다. (가치 있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다) 미국이 겉으로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군주론처럼 권력을 위해서(군주를 위해서) 힘을 사용하고 있다.

  군주는 사자여우 양자 모두를 닮아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이야기했다. , 힘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믿게 만들고 여우처럼 사람들을 미혹해야 한다. 정부나 대통령이 그러한 일들을 시켜놓고는 발뺌하는 그럴듯한 부인(plausible denial)’과 같은 방법처럼, 더러운 일들을 시켜놓고서 나중에 버리거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다.

  국력이라는 목적(군주와 마키아벨리 같은 조언자들에게 이익이 되는)이 왜 일반시민들에게도 이로운 목적으로 간주되어야만 하는가? (국가는 언제든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시민들의 자유를 희생시킬 수 있는데)

  목적을 위해 동원된 가장 끔직한 발명품이었던 원자폭탄은 전쟁을 끝나기 위해서라기보다 소련에 대한 압박과 전후에 국가적 위신을 강화하긴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한 수단을 위해서 많은 과학자들은 국력에 대한 봉사라는 명분으로 기꺼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일부는 반마키아벨리적인 행보를 걷기도 했다. 그렇다. 항상 소수의 반마키아벨리주의자들은 있어왔다. 물론 진하워드의 말처럼 마키아벨리는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헛수고하지 마시게나. 변할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건 인간의 본성이야.”

 

3. 폭력과 인간 본성

 

아인슈타인: “친애하는 프로이트 박사님, 인류를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구해 낼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요? 모든 나라에서 전쟁과 무기의 제조, 매매를 단지 자신들의 사적이익과 권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로만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소수지만 단호한 무리... 어떻게 이 소수의 도당이 전쟁이 일어나면 손실과 고통을 감내해야 할 처지인 대다수 사람들의 의지를 자신들의 야심에 봉사하는 쪽으로 돌릴 수 있는 걸까요? 아마도 인간이 자기 내면에 증오와 파괴의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증오와 파괴의 정신병증에 대해 내항력(耐抗力)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람들의 정신상태를 제어하는 게 가능한지요?”

 

프로이트: “당신은 충동질에 넘어가기 쉬운 증오와 파괴의 강렬한 본능이 인간 내면에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나는 전적으로 당신의 말에 동의합니다... 세계 역사를 아주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집단과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끝없는 투쟁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가지 기본 본능이 있지요. 성적인 혹은 사랑의 본능과 그 반대의 것인 파괴의 본능입니다. 성적 본능이 파괴의 본능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인류의 문화적 발전에 있고, 방안으로는 본능적인 삶을 억제하기 쉬운 지식층의 강화를 포함시켜 볼 수 있습니다.”

 

50년 뒤에 출현한 사회생물학(sociobiology) 학자 윌슨(E. O. Wilson)[인간 본성에 관하여(On Human Nature)라는 책에서 인간은 선천적으로 공격적인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추호의 망설임 없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조직화된 공격기법을 대표한다 할 수 있는 정쟁이 수렵, 채취 무리에서부터 산업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집단 내에 풍토병처럼 존재해 왔다.” 고 대답한다. 결국 심리학자든 생물학자든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폭력적인 본성의 증거를 역사에 기대어 설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 유전과학이나 인류학, 동물학, 그 어느 분야에도 전쟁의 요체인 공격적인 폭력성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다. , 인간 역사에서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것이 인간의 본성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논리를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선천성이란 하나의 특성이 특정 환경 내에서 발현될 가능성이 상당한 경우를 지칭한다.”라는 윌슨의 기준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충동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달려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했을 때, 누군가를 축이고 싶은 본능적인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군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징집되거나 참전한 군인들은 명령에 복종하도록 훈련되었고, 국수주의 이데올로기의 현장 한복판 가운데 내몰린 것이다.

 

4. 역사의 이용과 오용

편파적 선택 (어떤 사건은 흘려버리고 또 어떤 사건은 집중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록펠러의 스탠더드 석유회사 설립 vs 러들로 학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vs 콜럼버스의 종족말살

재즈 시대(1920년대 재미와 번영의 시대) vs 무주택, 빈곤, 절망의 시대

 

5. 정당한 전쟁, 부당한 전쟁 (과연 정당한 전쟁이었을까?)

 

전쟁에 대한 3가지 관점

1) 전쟁을 미화하는 것 2) 좋은 전쟁과 나쁜 전쟁으로 구분하는 것

3) 전쟁은 너무나 악한 것이기에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관점

 

자유주의 국가와 정당한 전쟁

자유주의 국가 VS 전체주의 국가의 전쟁은 정당한 것인가?

아테네가 스파르타보다 더 민주적이라고 전쟁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아테네의 경험이 말해 주는 바는, 한 나라가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일지라도 국외에서는 매우 잔혹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얻어질 이익을 지적함으로써 국민들을 좀 더 쉽게 다른 나라에 대한 잔학행위에 동원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국내의 자유주의조차도 국외에서 수행하는 전쟁에 의해 훼손되기 마련이다. 미국의 톰 페인은 전쟁이란 정부가 만들어낸 피조물로서, 그 나라 시민의 이해관계가 아닌 정부 자신의 이해관계에 복무한다고 보았다. 전시에서는 결국 애국심이 시대적 명령이 되고, 전쟁에 의문을 품는 자유는 억압되어지고 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자는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열성적인 폭격수가 되었다. 하지만 전후에 그는 과연 미국이 다른 여러 나라들의 독립권과 민족자결권을 위해서 싸웠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으며 전쟁과 정복으로 점철된 미국의 팽창의 역사를 밝히고 있다.

1)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100년 동안 전쟁을 벌여 그들의 땅에서 그들을 쫓아낸 것

2) 멕시코와의 전쟁을 도발하여 거의 절반에 가까운 멕시코 땅을 삼킴

3) 지배와 이익을 위해 카리브해 연안국가들에 적어도 20차례나 해병대를 파견

4) 하와이를 빼앗았고 필리핀 사람들을 정복하기 위해 가혹한 전쟁을 치름

5)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했을 때 미국은 군수품 수출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들이 이탈리아에 석유를 보내는 것을 허용.

6)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스트측이 히틀러와 무솔리니로부터 무기를 공급받고 있었음에도, 루스벨트 행정부는 중립법 제정을 후원하여 프랑코와 교전중인 스페인 정부에 대한 원조를 차단.

 

나치가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를 침공하고 일본이 1937년에 중국을 침공해 난징에서 대량학살을 벌였지만, 그것은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이지 못했다. 미국은 자기 소유의 땅인 하와이가 공격당하고 미 해군이 일본의 폭격으로 무력해졌을 때 비로소 전쟁에 가담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유태인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도 역사적인 여러 사실들을 조합해봤을 때 설득력을 잃는다.

 

그렇다면 이 전쟁(2차 세계대전)의 주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각 민족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위해 싸운 민족자결을 위한 전쟁이었을까?

(실제로 정부의 동기는 대체로 국가의 세력확대와 부유한 엘리트들의 좀 더 많은 이익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의 더욱 강력한 권력을 위한 것이었다. 앞에서는 전쟁이 끝나면 민족자결권이 보장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뒤에서 열강들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하는 전쟁이었을까?

(미국 내에 인종차별정책은 사회 전반에 여전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일본계 조상을 둔 사람들(일본인 2세인 니세이(Nisei)포함)에 대한 탄압이 있었고, 영국에서도 독일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과 이탈리아인들을 체포, 격리시키는 일이 있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었을까?

(자유를 위한 전쟁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전쟁을 비판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사회주의 노동자당 당원들이 1943년 미니애폴리스에서 18명이 기소되었고, 1940년에 통과된 스미스 법(Smith Act)은 혁명을 옹호하거나 군복무 거부를 주장할지도 모르는 집단에 가입하는 것, 또는 그와 같은 내용을 담은 출판물을 제작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또한, 사회개혁을 약속하는 듯했던 전쟁의 명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부와 권력이 같은 사람들에게 집중되었다.)

 

누가 더 잔혹했나? 끔찍한 기억: 드레스덴, 히로시마, 로리앙

600만의 유태인과 그 밖의 400만의 인간 생명을 고의로 가스, 총 그리고 불로 태워 죽인 나치의 극악한 죄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연합군에 의해 초래된 죽음도 역시 대규모였다. 드레스덴과 로리앙의 폭격과 히로시마 원자폭탄은 인간이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지옥이었다. 일단 전면전이 벌어지면 이러한 일들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2차대전의 대의명분은 파시즘을 무너뜨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전쟁은 파시즘의 패배로 끝났다. 무솔리니도, 히틀러도, 도조도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하지만 4천만의 사람이 죽었으며, 파시즘의 근본 요소들 - 군국주의, 인종차별주의, 제국주의, 독재, 광포한 국가주의 그리고 전쟁 등 - 은 여전히 전후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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