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학 리뷰

오만한 제국 2 / 6-10장 맛보기 / 법과 정의 / 미국의 계급제도 / 언론자유 / 대의제 정치 / 공산주의와 반공주의 / 궁극적인 힘

by 낭만리뷰어 2021. 12. 30.

 

차례

6. 법과 정의

7. 경제정의: 미국의 계급제도

8. 언론자유: 헌법 수정조항 1조에 대한 재고찰

9. 대의제 정치: 흑인들의 경험

10. 공산주의와 반공주의

11. 궁극적인 힘

 

6. 법과 정의

우리나라의 거리들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완력을 동원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안으로부터의 위험, 또 외부로부터의 위험. 우리는 법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법과 질서 없이 우리나라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1960년대에 한 하버드 법대생이 졸업생대표 연설에서 이러한 연설을 한 후 긴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그 학생은 청중들에게 조용히 말해 주었다. “지금 말한 것들은 1932년 아돌프 히틀러가 연설한 것입니다.” ~197p

 

법은 정의에 복무할 수 있다. 예컨대 법은 강간과 살인을 금지하고 있고, 인종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을 받아들이도록 학교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법이 젊은이들을 전쟁에 내보내고 부자를 보호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처벌할 때, 법과 정의는 서로 배치된다. 그런 경우 우리에게 더 큰 의무는 어느 쪽에 있는가? 법인가, 정의인가? 법과 정의는 따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게 전통적인 관념이지만, 어떤 법이든 무조건 복종하는 것은 정의를 침해하게 되며, 빠르든 늦든 거대한 무질서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198, 199p

 

현대의 법률 시스템은 룰렛 게임과 같다. 때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거의 항상 지게 되어 있다. 사회라는 이름의 룰렛 바퀴의 구조는 부의 거대한 불균형과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불균형은 시스템을 움직이고 정치를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 막대한 우위를 제공한다. 또한 견제와 균형을 통해서 대담하고 새로운 개혁안들은 의회 위원회나 상하 양원 중, 또는 대통령에 의해서 폐기되거나, 거부되거나, 무효화되어진다. 이런 시스템에서 이따금씩 얻어지는 승리는 일부 고통을 완화시키면서 희망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공정하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당신이 이 판을 엎어버리지 않고 게임에 계속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나는 국가에 대한 의무가 있다

소크라테스가 크리토에게

그대는 너무 현명해서 알지 못하겠는가? 그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대의 모든 조상들보다 그대의 나라가 더 가치 있고 더 존경받을만하며 더 신성한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신들과 지각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더 영예로운 자리를 부여받았다는 것을. 그래서 마땅히 그대는 경의를 표하고 승복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설사 그대에게 채찍질을 하고 투옥하고, 부상당하거나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로 보낸다고 해도 묵묵히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무정부주의자이자 여성운동가인 러시아계 미국인 에마 골드만이 20세기 초반에 애국심에 대하여 강연하면서.

자만, 오만함, 자기중심주의, 이것들이 애국심의 본질입니다. ...애국심은 우리의 지구가 저마다 철대문이 둘러쳐져 있는 작은 지점들로 분할되어 있다고 여깁니다. 몇몇 특별한 지점에서 태어난 행운아들은 자신들이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이들보다 더 훌륭하고 고귀하며 더 위대하고 지성적인 존재라 생각하고, 그러므로 자신들의 이 우수성을 다른 나라들에 억지로라도 심어주기 위한 공격에 참여하여 싸우고 죽고 죽이는 것이, 선택된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양심에 위배될 때, 그 법을 어기는 것은 당신의 권리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당신은 마땅히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 옳게 처신했는데, 당신은 형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형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과 양심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시민불복종 운동의 위대한 전도사 중 한 명이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처럼 시민불복종은 곧 법에 대한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것이다. 법을 뛰어넘는 저항은 민주주의로부터의 이탈이 아닌 민주주의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여기에는 붕괴와 말썽이 뒤따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필요한 붕괴이고 유익한 말썽이다.

  그렇다면 시민불복종은 언제나 옳은가? 내가 마틴 루터 킹의 법위반 행위를 인정하긴 하지만, KKK단의 불법행동까지 인정할 수 는 없는 것 아닌가? 이것은 오해에서 비롯되는데, 법이 정당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은 적법성이 아니라 도덕성인 것이다. 우리가 법에 대한 모든 불복종 행위를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법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거부하는 데 있다. 법이 아니라 정의(justice)가 궁극적인 잣대가 되어야 한다. 이 때 하나의 공포는 시민들이 이런 식으로 법에 복종할 것이냐 불복종할 것이냐를 결정하게 되면 끔직한 사태가 초래될 것이라는 게 그것이다.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곧 세계가 공산화될 것이라는 생각과 같은 것인데, 이는 사회적 변화를 일단 한번 밀기만 하면 밑바닥까지 그냥 돌진해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실제로 시민불복종은 다른 모든 개혁운동과 마찬가지로 언덕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는 일에 더 가깝다. 세상사는 일반적으로 기존의 것이 그대로 존속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그 자연스런 추세상 격렬한 폭동으로 치달은 몇몇 경우가 아니라, 사람들이 불가항력적인 부당한 상황에 직면하여 갖게 되는 복종적 성향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끔찍한 일들, 예컨대 전쟁, 대량학살, 노예제 따위는 불복종이 아니라 복종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230p

 

불복종과 해외정책

역사적으로, 해외에서의 미국 군사력 행사들은 대통령에 의해서 결정되었고, 의회는 그저 유순한 양떼처럼 처신했다. 1973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하고, 의회는 전쟁 상황에 미군을 투입하는 문제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전쟁 권한에 대한 법령’(War Powers Act)을 통과시켰지만, 그 후에도 무시되기 일쑤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하고 권력에 복종하기를 거부한 드문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미군 병사들의 반전운동도 조직화되었었는데, 이러한 반전의식의 확산은 베트남에서 포로가 되었던 한 육군 하사관의 회상에서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첫 번째 수용소에 닿을 때까지 본 마을들 중 성하게 남아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파괴되어 있었다. 나는 그 한복판에 주저앉아 스스로 반문했다. 이게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 마을들을 파괴하는 게 옳은 것인가? 사람들을 몰살하는 게 옳은 것인가? 잠시 후, 답은 금방 나왔다.”

 

폭력

반전 운동가들이 서류조각(징병카드와 징병기록들)을 불태우는 것과

동남아시아에 700만 톤의 폭탄을 투하하는 정부

 

반전운동은 극히 비폭력적인 운동이었지만, 드물게 언급할 만한 사건은 위스콘신 주 매디슨시의 사건 정도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초법적인(extralegal) 행동들 즉 대중에게 직접 알리고 대중을 직접 각성시킬 목적으로 정부의 통상적 절차들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다음은 그 다양한 행동들 중 몇 가지 예이다.

1) 수천 명의 국민들이 납세를 거부하였다.

2) 평화를 위한 단식투쟁들이 벌어졌다.

3) 두 명의 젊은 선원이 전쟁지역으로 폭탄을 수송 중이던 미군의 군수품 선박을 태평양에서 하이재킹하여 캄보디아 중립지역으로 선회시켰다.

4) 대학 졸업식에서 다양한 시위가 벌어졌다. 1969년 브라운대 졸업식에서는 내빈으로 참석한 헨리 키신저에 대한 항의 표시로 졸업생의 2/3 가 등을 돌려 앉았다.

 

이러한 저항들이 정책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베트남전의 경우에는 강력한 증거들이 존재한다. 1968년 봄, 존슨 대통령에게 20만 명의 추가 투입을 요청한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국방부 내 소규모 연구그룹으로부터 더 이상 전쟁을 확대시키지 말라는 충고들 들어야 했다. (민심이탈 현상이 증대됨에 따라 징병거부자들이 늘어났고, 우리가 국내문제들을 무시한 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모의 국내적 위기를 야기 시킬지 모른다는 생각들 때문에 사회적으로 불온한 기운이 증대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틀림없이 계속될 것이다.) 이 이후에, 존슨 대통령은 웨스트모어랜드의 요구를 꺾고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 제한조치를 발표했으며, 북베트남 당국자들과의 협상을 위해 파리 평화회담 테이블에 나가는 데 동의했다.~255p

 

7. 경제정의: 미국의 계급제도

경제정의란 무엇인가? 좋은 경제제도는 무엇을 자기 목표로 삼아야 하는가? 이 나라의 부와 빈곤, 계급적 차별의 실태는 어떠한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이 현실로부터 좀 더 정의에 근접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철저한 개인주의와 자립 (달러에 의한, 달러의, 달러를 위한 정부)

제퍼슨은 독립선언서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거기에는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가 들어 있다.” 라고 썼다. 하지만 그러한 독립선언서를 채택하고 11년이 지나 헌법을 제정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부의 분배 상태를 그 당시 상태 그대로 유지하는 데 맞춰 헌법 내용을 입안하였으며 그 것은 아주 불평등한 것이었다. 헌법을 기초한 이들 자체가 최상층 계급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부의 평등한 분배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Discourse on the Origin of Inequality)을 통해 그 기원을 살펴볼 수 있다.

 

약자들에게는 새로운 족쇄를, 부자들에게는 새로운 힘을 부여한 사회와 법률의 존재는 자연상태의 자유를 회복 불가능하리만큼 파괴시켰고, 불평등 소유라는 규칙을 끝없이 확립시켰으며, 교묘한 강탈을 확고부동한 권리로 변모시켜, 전 인류가 소수의 야심찬 인간들을 위하여 노동과 예속과 비참 속에 살도록 강제하였다.”

 

재능과 필요

소득편차가 큰 사회에서 나고 자란 우리들은 현재의 상황을 당연하고도 고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능력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돈을 벌어들이기도 하지만, 똑같은 능력이 있어도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돈 버는 수완을 빼고는 전혀 무능해도 그들은 아주 부유하다. 결국, 능력과 돈 사이에는 어떠한 논리적 연관도 없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모든 인간은 능력과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요구, 이를테면 집, 음식, 의료혜택, 교육받을 자격 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능력이 아직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그들 부모의 능력에 기초해서 음식과 의료혜택을 받고 있다. 그것이 공평한 일인가?

 

부는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마르크스주의의 견해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 사회의 부를 분배한다는 것이다. 필요의 원칙이 모든 데 다 적용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쉽지 않은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떻게 모든 재화가 정확히 분배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가 복잡하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것들 - 음식, 주택, 의료, 교육, - 은 필요에 따라 분배되어야 한다는 데 합의를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주 커다란 성과가 될 것이다.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와 그 사람의 소득이 얼마인가 사이에는 어떠한 합리적 연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 중에는 일하지 않아 가난한 사람들이 있고, 일하지 않는데도 부자인 사람들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곧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양 되어 왔다. 과연 일하는 양의 가치를 어떻게 매길 수 있을까? 지성인가? 열심히 일하는 것인가? 사회에 대한 기여도인가?

 

필요에 근거한 분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사람들의 생활에 간섭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며, 그것을 강압’(coercion)이라 부른다. 정부가 5%의 최고 부자들한테서 그들이 벌어들인 액수에 걸맞은 세금을 걷어다가 가장 가난한 5%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강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모든 징세행위를 다 강압이라고 해야 할 것이며, 그 때 진정으로 물어야 할 것은 어떤 경우에는 정당하고 부당한지 일 것이다. 현재의 불평등한 부의 편재가 우리의 자유를 신장시켜 주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의 언어도단이다.~294p

 

인센티브와 이윤동기

부유한 자들은 높은 이윤이라는 동기부여야말로 경제를 굴러가게 해주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말한다. 그러나 레이건 집권 초기에 기업 활동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저 세율 정책을 사용했으나, 1970~83년에 시행된 이 정책은 더 많은 자본투자로 이어지지 않았으며 , 오히려 실제투자는 훨씬 줄어들었다. 돈이라는 동기가 꼭 질을 높이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사회전반에서 볼 수 있다. 오히려 이윤을 향한 충동이 무자비한 수단을 당연시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합리적인 자기이해라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이윤추구의 무자비성이 어린 노동자들을 더러운 공장에 내몰았고, 담배, 자동차, 군수산업 등에 대한 정부의 관대한 간과는 다음 세대에 전 세계적인 대재앙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정의를 향하여 / 이성, 대의제 혹은 투쟁?

합의가 필요한 목표들이 있다. 진정한 빈곤과의 전쟁을 위해서 일자리나, 주택 등의 사회보조정책들을 마련해야 하고, 실제로 미국은 그럴 수 있는 시스템(ex:군사시설에 대한 지원)을 이미 가지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경제사회적 계획은 어떤 점에서는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데는 대규모 자원 재분배가 필요할 것이다. 분명 이러한 우선순위의 조정은 거대한 저항을 만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국가적, 세계적 우선순위를 평등과 경제적 민주주의 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부자 나라나 가난한 나라나 그 나라 시민들이 나서서 스스로를 하나의 세력으로 조직해 내야만 할 것이다.

 

8. 언론자유: 헌법 수정조항 1조에 대한 재 고찰

 

헌법 수정조항 1

의회는 종교의 창시에 관한 법이나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법, 또는 언론 혹은 출판의 자유나 사람들이 평화롭게 집회를 가질 권리, 불만사항의 시정을 정부에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

이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믿음은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 중 일부이다. 오로지 권리장전의 존재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으려는 것은 심각한 착오이다. 이는 우리의 자유를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생명까지도 위험하게 할 수 있다

 

사전제약 금지’(no prior restraint)?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출판할 수 있다. 정부는 당신을 미리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일단 당신이 말하거나 글로 쓴 후에, 정부가 특정 부분에 대해 불법이라고 결정하거나, 또는 해롭다거나 심지어 부적절하다고 규정한다면 당신은 감옥에 갈 수도 있다. 수정조항 1조를 신뢰한다면 적어도 사전에 차단당하지는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언론자유와 국가안보 (간첩법에서 스미스 법까지)

간첩법 1917: 간첩행위에 관한 항목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나, 다음과 같은 내용도 포함되고 있다. 국가가 전시상태일 때 고의적으로 국가에 대한 불복종, 불충실, 반란 또는 미 육군 및 해군에 대한 의무수행을 거부하거나, 또는 이를 기도하는 자, 또는 고의적으로 미국의 모병 또는 징병 활동을 방해하는 자는최고 2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스미스법 1940: 간첩법의 조항을 평화 시까지 확장해 군에 대한 불복종 또는 의무의 거부를 야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성된 글을 배포하거나 말하는 행위, 그리고 무력과 폭력에 의한 정부전복을 교사하거나 주장하는 행위또는 교사하거나 주장할 것을 공모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끊임없이 국가안보라는 주장에 눌리게 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위기상황에서 대외정책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시민의 권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른바 각종 선거에서 자유롭게 투표권을 행사하는 나라, 사회 전반에서 민주주의라 부르는 요소들이 운용되고 있는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일상생활을 구성하고 있는 조직들 - 학교, 일터, 군사기지, 법정에서 우리의 언론의 자유는 그 조직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권력에 의해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357~358P 뿐만 아니라 비밀경찰(FBI, CIA)의 존재와 그들의 다양한 활동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이다. 일찍이 마크 트웨인은 우리나라에서 우리는 말할 수 없이 귀중한 다음 세 가지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 그리고 이 둘 어느 것도 절대 행사하지 않는 신중함이라고. ~367p

 

#이 후의 8장의 내용에서 정부가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통제하고 거짓과 기만을 펼친 사건들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바이기도 하고 이 책이 출간된 1991년에 비해 현재의 달라진 상황에 대한 보충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음#

 

9. 대의제 정치: 흑인들의 경험

 

필자는 9장을 통해서 의문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대의제를 비판하고 있다. 어떤 대표자도 다른 사람의 요구를 제대로 대표할 수는 없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투표할 권리를 가지고 있어도 선택의 폭이 좁고 돈의 논리가 선거과정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도 민주주의에 대한 보장책으로서 확실히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러한 대의제에 대한 비판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흑인들의 차별에 대한 역사를 쭉 밝혀오면서 미국역사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작부터 소외되어온 흑인들이 미국의 건국초기부터 최근까지 차별을 견디며 살아온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대의제 정치가 인종문제나 계급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인다. 인권 쟁취의 중대한 고비에서 대의제 정치가 표방하는 공식적 절차는 간혹 유용하긴 하지만 결코 충분치 못하며, 오히려 장애물이 되기 쉬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움직여온 것은 대의를 위해 결속하여 위험을 같이 겪고 희생을 함께해 온 민중들의 직접행동이었다는 것이다.

 

10. 공산주의와 반공주의

 

반공주의는 미국 지배이데올로기의 일부이다. 이때의 반공주의는 공산주의 일반이나 공산주의 국가라 불리는 나라들에 대한 이성적 비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공주의란, 미국으로 하여금 자국 시민을 감시하게 하고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게 만들며, 힘들게 번 미국인들의 임금에서 떼어낸 세금으로 괴물 같은 무기들에 수조 달러를 지불하게끔 해온 히스테릭한 공포를 말한다. ~456p

 

공산주의: 이성적 비판

위에서 말한 반공주의는 이 나라와 해외의 인권상황에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이성적인 비판에 대해서는 주의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

 

저자가 믿게 된 2가지

1. 공산주의의 이상, 즉 고도로 발달된 기술과 아주 짧은 노동시간, 그리고 그로 인해 각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미적, 개인적 취미를 계발하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풍요를 누리는 무계급사회. 일터와 지역에 뿌리박은 집단공동체들로 구성되어 있고 인종적, 성적 우위가 철폐되고 국가의 강압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모든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자 주어지고 국가 간의 증오나 국경이나 전쟁이 없는, 진정함 참여민주주의의 사회. 내가 믿기로는 칼 마르크스가 마음에 그린 사회는 이런 사회였을 것이다.

 

2. 소련은 마르크스의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경직된 당관료의 독재체제로 변형시켰으며, 공산주의자의 이상을 계속해서 배신해 왔다. 상당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여러 가지 사회제도(탁아, 의료보장, 무상교육, 퇴직수당, 완전고용 등)를 확립하기는 했지만 소련이 그 국민들을 취급하는 방식은 혹독했다. 집단화 과정에서 다수의 농민을 살해했고, 반체제자로 간주되는 사람들을 투옥, 고문, 처형하였다. 소련은 경찰국가라는 표현이 아주 잘 어울리는 상황이며, 이는 민주적 사회주의 이념을 믿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또 소련은 다른 나라들(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아프가니스탄 등)을 침략하여 수천 명의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제국주의 국가들을 모방해 왔다. 469~470p

 

저자는 유토피아적 이상임을 밝히며, 폭압적 권위(국가의 권위, 교회의 권위, 고용주의 권위 등)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아나키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회가 여러 방식으로 다양하게 조직화되어야 한다는 것, 사람들은 일과 놀이를 위해 서로 협력하여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등을 아나키스트들이 믿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가 오래 유지된 적은 없지만 1871년의 파리코뮌과 스페인 내전 초기의 6개월 남짓한 시기를 예로 들고 있다.

 

11. 궁극적인 힘

 

역사적 사건들로 가득 찼던 20세기의 끝자락에서 바라볼 때, 가장 부각되는 것은 역사의 완전한 예측 불가능성이다. (러시아혁명, 고르바초프의 개혁/ 독일의 극적인 변화들/ 중국의 공산혁명과 그 후 일어난 여러 차례의 방향전환/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에서 구 서구제국들의 지배체제와의 해체....)

 

불확실한 목적, 용납할 수 없는 수단

전쟁이든 국내의 소요사태든 그 어떠한 고상한 목적을 내세운다 해도, 대규모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결과도 확실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일의 목적은 바람직하긴 하나 불확실하고, 그 수단은 끔찍한 동시에 확실하다고 할 때,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수단은 써서는 안 된다고 결론내릴 것이다. 전쟁준비는 자만에 부푼 군사관료들과 무기들을 유지시켜 주고, 기업에 이익을 선사하며, 정치가들에게 특별한 권력을 쥐여 준다.

 

폭력 없는 정의

우리 시대의 도전은 과거의 폭력을 정당화해 온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공격에 대한 방어가 됐든 폭군 타도를 위한 것이 됐든) 이제 이런 목적들은 다른 방법으로 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폭력 직접행동(nonviolent direct action)은 민주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 이러한 운동은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무기에 의존할 필요를 없애버릴 것이다.

 

새로운 현실주의

위에서 말한 이런 주장들은 충분히 낭만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소리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토피아 사상은 역사의 어느 시점에 이르러 그 사상의 도덕적인 힘이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고 다수가 이를 지지하게 되는 때가 되면, 현실적인 것으로 된다.

 

새로운 의미로의 변환

안전보장(security): 사람들의 건강과 복지

국방: 전쟁을 수행하고 무기를 비축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창조적인 비폭력 저항방법으로 폭 정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단합된 행동

민주주의: 정치지도자들이 대신 결정하게 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권 . 어떻게 정의와 자유를 성취할 것인지를 국민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애국주의: 국가의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 아닌, 이웃을 돕고 인종과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의미.

 

화학자 조지 키스티아코프스키는 원자폭탄 계획에 참가했던 과학중 하나로, 말년에 암으로 죽어가면서 광적인 군비경쟁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는 데 남은 생을 바쳤다. 그는 핵과학자 화보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나는 여러분들께 작별인사를 다음의 말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공식적인 경로 따위는 잊으십시오. 세계의 파멸까지는 결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서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더불어,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는 그러한 대중적 평화운동을 조직하는 데 힘을 모으십시오.”

 

그는 그가 만들어낸 폭탄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게 된 사람들이야말로 궁극적인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