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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리뷰

2.28 민주운동 기념일 / 일요일에 학교 가라고?

by 낭만리뷰어 2022. 2. 15.

2.28 민주운동은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왜 당국은 학생들에게 일요일 등교를 지시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학생들은 무엇을 외치며 길거리로 나섰을까요? 민주화 운동의 불꽃을 피웠던 그때로 돌아가 봅니다. 

 

숫자-28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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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등교는 절대 할 수 없지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A: 야! 내일 일요일에 조기 중간고사 치른다고 다 학교에 나오래!

B: 뭐?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야! 다른 학교 친구들한테도 연락 돌려!

 

1960년 2월 28일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장면'은 대구에서 유세를 벌이기로 합니다. 그러자 당국은 대구의 8개 공립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를 지시했습니다. 학생들이 유세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죠. 그 당시 대통령은 이승만의 당선이 유력했습니다. 유일한 대항마였던 야당 조병옥 후보가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갑자기 죽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부통령의 경우는 팽팽했습니다. 그런데 부통령이 누구가 되는지가 왜 그토록 중요했을까요. 당시 이승만은 86세의 고령이었습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자유당은 다음 권력승계자인 부통령도 자기 쪽 사람으로 만들어야만 했던 거죠. 그러던 차에 상대 후보인 '장면'의 대구 유세가 예정된 것입니다. 대구는 그 당시 야당(민주당)에게 힘을 몰아주는 곳이었습니다. 모두가 대구 유세를 주목하는 가운데, 당국은 그 유세 현장의 힘을 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배제시키기 위해 일요일 등교를 명령했던 것이었죠. 

 

학생들은 당연히 거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당시 경북고 학생부위원장의 집에 대구고, 경북고, 경북대사대부속고 등의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시위를 벌이기로 한 것이죠. 그리고 결의문도 작성했습니다. 

뜨거운 학생들의 외침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는 학생들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만들었고, 그렇게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최초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28일 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불의를 규탄하는 함성으로 길거리를 덮어 버렸죠. 경찰들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시위대를 막으려 했지만, 시민들은 학생들을 숨겨주며 함께 했습니다. 

 

독재 항거의 출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이승만 독재, 거기에 어린 학생들이 반기를 들자 대구 언론들도 용기를 얻었습니다. 대대적인 보도가 이어지자, 그 소식은 부산, 마산, 대전, 서울 등으로 계속 확산됐습니다. 그리고 3.15 마산의거와 4.19 혁명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쭉 이어져 내려간 것이죠. 

 

일요일에 학교 가라고 명령하면 조용히 넘어갈 줄 알았는데, 더 큰 일이 일어났죠. 학생들이 투쟁의 포문을 열었고, 시민들은 그래서 더욱 민주화 운동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2.28 민주운동은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의 아주 중요한 역사죠. 이 첫 시작점을 기념하기 위해 2018년 드디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습니다. 앞으로도 2.28의 특별한 역사를 기념하며, 그때의 함성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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