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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리뷰 / 고전명작 / 닥터스트레인지러브

by 낭만리뷰어 2021. 12. 25.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 나는 어찌하여 근심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스텐리 큐브릭 감독 / 코미디, 드라마 / 92 / 1964

 

“쾅!

 

'윙~~'하는 소리 때문에 귀가 안 들린다. 포가 날아가는 동시에 마치 공간이 찢어지는 것 같은 날카롭고 위협적인 소리의 울림이 전달된다. 후폭풍의 먼지가 가라앉을 때쯤 군인들은 여유롭게 다음 포를 쏠 준비를 한다. 군시절 내가 속한 부대는 105mm, 155mm 곡사포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처음엔 위협적이었지만 그것도 신기하게 익숙해졌다. 나중에는 귀마개도 필요 없고, 멀쩡하게 여유를 부리다가 그 순간에만 살짝 한쪽 귀를 막고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역시 군인은 ‘자세’가 살아야 한다.

 

“쾅!

 

평생 잊히지 않을 꿈 속 장면이 있다. 익숙한 길을 걷고 있는데, 머리 위로 미사일이 지나가는 거다. 궤도를 보니 멀지 않아 어딘가에 떨어질 것 같았다. 순간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쾅! ! ! ! ! ! 

이 영화의 마지막이다. 미국 비행기에서 한 발의 핵폭탄이 소련 땅에 떨어지고, 연쇄적으로 보복을 위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른다. 이 때 나오는 음악은 "We'll meet again". 밝고 우아한 음악은 ‘지구 최후의 날’처럼 보이는 마지막 장면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이야기한다. 

“우리 다시 만나게 될 거에요.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전쟁광인 리퍼장군은 평소에는 대통령만 핵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전시에는 하급사령관들도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B-52기에 타고 있는 군인들에게 소련영토에 핵폭탄을 투하할 것을 지시한다. 이 상황을 알게 된 대통령은 이를 막기 위해 전쟁 상황실로 소련 대사를 불러 서기장에게 연락을 취해 회항명령코드를 알아낸다. 하지만 수신기가 고장난 비행기 한 대가 홀로 끝까지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긴박한 몇 시간, 리버장군이 사령관으로 있는 군부대와 B-52기 비행기 안 그리고 대통령이 있는 전쟁 상황실을 교차로 보여주며 영화는 진행된다. 심각한 스토리지만 과장된 연기와 코믹스러운 장치들을 통해 블랙코미디를 완성시킨다.   

 

# 장면 

핵폭탄을 탄 카우보이     

       

콩 소령은 핵폭탄 투하장치가 고장 나자 직접 내려가서 고치다가 폭탄과 함께 떨어진다. 마치 로데오를 타듯 그 폭탄위에 앉아서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은 우습기보다 광기가 느껴진다. 이 장면은 사실 앞에서 예고되어 있었다. 공격명령이 내려지자 카우보이모자로 바꾸어 쓰는 ‘준비의식’에서 말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임무를 완수하려는 모습은 충직한 군인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총을 든 무대포의 카우보이를 연상시킨다. 한 인간의 충성심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보여주면서. 

 

나치인사를 하는 스트레인지러브 박사  

         

독일에서 망명한 나치 출신 스트레인지러브 박사가 전쟁 상황실에 있다가 대통령에게 지구 멸망의 날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조언하는 장면이다. 방사능이 뚫지 못할 지하세계를 건설할 것, 컴퓨터로 수십만의 사람을 선별할 것(물론 주요 정부인사와 군 수뇌부 인사 포함), 인류 번식을 위해 남녀성비를 1:10으로 할 것. 이와 같은 말을 하는 도중에 의수처럼 보이는 그의 오른쪽 팔은 제어가 되지 않고 허공을 향한다. 그리고 외친다.  

 

하이 (히틀러)!

 

이 장면에 앞서, 이렇게 된 이상 되돌릴 수 없다면서 실제로 소련을 침공할 것을 주장하는 장군에게 대통령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히틀러 이후 최악의 살인마로 역사에 기록되긴 싫소.” 미국이나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실제로 많은 독일 과학자들을 데리고 와서 일을 시켰다고 한다. 히틀러처럼 되지 않겠다고 말하는 대통령이 광적인 나치 과학자의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는 설정은 감독이 비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는 나치인사를 억제하지 못하는 박사의 모습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주변 무리들의 모습에서 한 번 더 드러난다.  

 

# 대사  

“여러분! 여기서는 싸우며 안 됩니다. 이곳은 전쟁 상황실(war room)이란 말이오.

 

 소련대사와 미국장군이 한 쪽에 차려진 뷔페 음식 앞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대통령이 그들에게 외친 말이다. 전쟁의 상황을 결정하는 이 방 안에서는 누구도 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일까. 전쟁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누구의 손에서 운명이 결정되는가. 영화 내내 코미디 같은 대화가 이 전쟁 상황실에 계속 울려퍼진다. 이러한 조롱은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어째 마음이 씁쓸하다. 웃고 넘어갈 수준을 넘어선 코미디가 우리의 현실에 너무 자주 출몰해서일까. 전쟁 상황실을 몰래 찍으려는 소련대사, 그를 막기 위해 몸싸움도 불사하는 미국장군, 그들에게 당연하지만 코미디 처럼 들리는 소리를 하는 대통령까지. 평화를 위해서 싸워야 할 방은 잠시 슬랩스틱 코미디 무대가 된다.  

 

 

“우리 측 기지 사령관 하나가 머리가 좀 이상해졌죠. 그러더니 황당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 폭탄을 실은 비행기는 연락이 두절된 채 곧 있으면 소련의 영공에 진입한다. 대통령의 선택은 소련대사를 불러 최고 서기관과 대화를 하는 것.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서기관은 술에 취해있는 듯하다. 영화상에서 서기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대통령의 반응으로 가늠할 뿐. 겨우 본론을 이야기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통령의 말이 구차하기 이를 데 없다. 

 

“저기여. 우리 쪽에 이상한 사령관 하나가 황당한 일을 저질러서 폭탄이 그 쪽으로 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디를 타격할지 미리 알려 드릴 테니, 혹시 회항하지 않고 그 쪽으로 가면 격추를 하세요.” 뭐 이런 식이다.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서기관과 대화를 풀어 나가는 구차한 대통령의 모습. 이러한 풍자가 냉전시대가 한창인 1964년에 가능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냉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새롭게 요리하는 천재감독의 방식도 놀랍다. 파멸의 무기인 ‘핵’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부조리한 현실에다가 우스꽝스러운 군인과 정치인들의 모습을 더해서, 평화를 향한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이지만, 그 뒤에 남은 제목이 있다. 

 

“나는 어찌하여 근심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감독은 이 제목을 통해 본인이 말하자 하는 바를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평화’라는 목적을 위해서 핵무기가 가진 위험성을 무시하고 위험한 수단을 선택한 무모한 사랑에 대해서. ‘핵’이라는 수단이 과연 우리의 평화를 지켜줄까? ‘최첨단 기술’이 우리의 평화를 지켜줄까? 이제는 그 눈 먼 사랑을 포기하고 다시 근심하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겨눈 총구는 반드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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