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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리뷰 / 문제작 / Irreversible, 2002 / 복수에 대한 욕망

by 낭만리뷰어 2021.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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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한 여자의 복수를 위해서 두 남자가 밤길을 헤매고 있다. 스크린에 투사되고 있는 흔들리는 카메라워크와 불안한 소음은 마치 관객의 정신을 시험하고 있는 듯하다. 드디어 복수의 대상인 그를 찾았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주인공은 그놈의 머리를 소화기로 내리치기 시작한다. 그나마 관객을 배려하는 것처럼 그 복수의 장면을 비추는 조명은 어둡게 처리되었다. 그러나 주인공의 분노마저는 감출 수가 없다. 

 

마치 4D 영화처럼 주인공의 분노는 거친 숨소리와 땀 그리고 특히 소화기가 그놈의 머리와 부딪히는 소리를 통해서 충분히 전달된다. 그렇게 사랑하는 이를 위한 복수는 이제 끝났다. 하지만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고 결국 가장 행복하게 보이는 장면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이 영화(Irreversible, 2002)를 한 동안 머릿속으로 되뇌던 때가 있었다. 마치 100여분의 시간을 힘겹게 완주하듯이 본 이 영화는 그만큼 완주 후에 충분한 회복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몇 년 후 이 복수의 순간을 계속 떠올리던 때가 있었다. 이렇게 복수를 하고나면 속이 시원할까? 그렇게 복수의 욕망이 꿈뜰대고 있었다.  

 

'복수'는 분명히 매혹적인 스토리다. 매력적인 악당들은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슬프고 아픈 스토리가 있다. 누군가를 위해 복수의 여정을 떠나는 주인공들은 때로는 납득이 안 갈 정도로 자신을 희생하며 복수를 완성하려고 한다. 선한 캐릭터든, 악한 캐릭터든, 아니면 그 중간에 끼어있는 어정쩡한 캐릭터든 복수라는 소재를 빼놓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너무 심심하다. 

 

심지어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볼 때도 우리는 이런 점을 쉽게 발견한다. 자신을 떠난 그 사람에게 통쾌하게 복수하기 위해서 두 명의 주인공은 서로를 아름답게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복수의 스토리는 계속 등장하게 될 것이다. 우리네 삶에는 그런 이야기 거리가 천지빼까리니까. 

 

결국 복수극이다. 피만 안 튀길 뿐이다.

 

We are mostly revengeful.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개인과 사회가 유지되는 에너지를 그가 정의하고 있는 '욕망'에서 찾으려고 애썼다. '욕망'을 향한 끊임없는 충동은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의 구조는 불완전한 언어의 구조와 흡사하다고 라캉은 지적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욕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대로라면 이러한 욕망의 구조가 완전해서 모든 것이 채워지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욕망하는 것을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기표)가 불완전한 것처럼 욕망의 구조 역시 불완전하다. 다시 반복하자면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욕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경험했던 것처럼 그토록 원하던 대상을 얻게 된 순간에 혹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린 또 다른 대상에 눈이 간다. 

 

그렇다면 복수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신기루와 같다. 비록 신기루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사막을 걷고 있는 우리는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최소한 호수처럼 보이는 그곳을 향해 지친 몸을 이끌고라도 가봐야 한다. 금방 내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 뻔해도, 앞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신기루라도 쫓아가야 하는 것이다. 

 

문제작

복수가 끝나도 시원하지 않은 기분이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상영 중간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갈 정도로 처참한 장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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