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믿음은 이미 어린 시절 깨어져 버렸다.
어른들 때문에.
"금방 돌아올께...."
철석같이 믿을 수록 '철썩'하고 두드려 맞았다. 사회라는 테두리안에 들어와 보니 어른들이 한 약속이나 가르침이 빗겨날 때가 많았다. 착하고 정직하게 살면 오히려 무시를 당한다. 그래도 약속을 지키려고 애쓰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친척 가게에서 알바를 했는데, 약속보다 돈을 적게 준다. 약속한 돈의 1/4을 주고 적당히 얼버무린다. 그 외에도 수많은 약속들이 파기되는 것을 경험했다. 약속은 이렇게 어기려고 있는건가. 버려진 아이는 그렇게 평생 깨어진 약속의 날카로운 파편사이를 걸어다니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문득, 그때는 공감이 별로 안 갔던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장그래를 미워하며 자신의 처지를 억울해하던 한 동료인턴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는 억울했다. 좋은 회사를 가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과외를 하고 학원을 다니며 죽도록 공부만 했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스펙을 쌓고 학점을 관리하면서 정작 하고 싶은 일들은 항상 뒷전이었다. 근데, 장그래는 그렇게 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억울함이 폭발한다. 장그래는 기회조차 얻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리가 있다. 그러고보니 요새 억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스펙을 쌓으라고 잔뜩 스펙을 쌓았더니 이제는 창의적 인재를 찾는다고 난리니. 그렇다고 스펙을 안 보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점점 뭐가 더해지기만 한다. 창의력도 학원에서 배워야 하나. 억울한 자들은 또 다른 학원문을 기웃거린다.
영화 '손님'은 '하멜른의 쥐잡이', 흔히는 '피리부는 사나이'로 알려진 동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1200년대 독일의 하멜른은 1950년대 한국 전쟁 직후의 고립된 한 시골마을로, 주요인물인 시장은 촌장으로, 피리부는 사나이는 아픈 아들을 고치기 위해서 서울로 향하고 있는 떠돌이 악사로 바뀌었다. 근데, 홍보하는 영화장르가 썩 맘에 들지 않는다. '판타지 호러'라니. 판타지는 우리의 공상을 말 그대로 환상적으로 채워주어야 하는데, '호러'가 떡하니 뒤에 붙어 있으니 몇 번은 끔찍하거나 깜짝 놀랄 장면이 준비 되어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장르 선택은 '피리부는 사나이'의 스토리가 가진 특징들을 살펴보면 아구가 맞는다. 갑자기 도시에 쥐가 들끓는다거나 피리를 부니 그 쥐들이 사라진다는 설정 자체는 '판타지'에 적합하고, 마지막에 마을의 아이들이 사나이와 함께 영원히 사라지는 장면은 판타지에서 호러로 넘어갈만한 섬뜩함이 스며있다. 또 '호러'라는 장르의 몰입감을 위해 폐쇄된 공간이라는 설정도 중요하다보니, 한국전쟁 직후에 고립된 산골이라는 배경도 완성되었다.
우룡의 두 가지 약속, 상생과 파멸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서울로 가능 동안, 우룡은 내내 여비와 치료비를 걱정했을 것이다. 돈도 없었고 병을 고친다는 확실한 보장도 없었지만, 아버지라는 이름은 작은 희망이라도 찾아서 떠나게 만드는 동력이었으리라. 그런 그에게 들끓는 쥐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마을이 운명처럼 나타났고, 또 손을 내밀었다. 물론 이 '운명'은 장르를 따라 가혹하게 흘러갔지만...... 동물을 모는 재주가 있는 우룡과 이 마을의 만남은 기가 막힌 조합이었다. 우룡은 여비와 치료비를 벌 수 있고 마을은 골치아픈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우룡은 쥐를 몰아낼 것을 약속하고 촌장은 사례를 약속한다. 그리고 우룡은 그 일을 해낸다. 물론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갑'의 입장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유는 만들면 그만이다. "쥐가 사라지는 과정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어디 숨었다가 다시 나타날줄 누가 알겠느냐", "우리가 그 전에 열심히 노력해 놓은 게 운이 좋게 딱 맞아 떨어진 것 아니냐", 요새였으면, "계약서 쓴 적이 있냐", "구두계약은 이런 경우엔 효력이 없다", 뭐 그런 식이다. 물론 촌장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그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촌장이 만들어 놓은 구조를 흔드는 우룡의 '힘'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어 마음을 얻고, 그 마을의 구조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선무당'과 함께 떠나려는 것에 큰 '위협'을 느낀 것이다.
일제가 그랬던 것처럼 '위협'은 제거되어야 한다. 사람이던, 쥐새끼던, 은인이던. 영화상에서도 밝혀진 것처럼 촌장은 한국인 일본군이었다. 일본군 정복과 일본도까지 버리지 않고 소장했던 것을 보면 촌장이 얼마나 그 권력에 함몰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촌장은 그래서 동일한 방식으로 이 마을을 수호하고 싶어한다. 물론 그 방식은 마을 주민들을 억압하고 단속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끝내는 우룡의 아들을 제거하게 되고, 우룡도 이어서 복수와 함께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개인의 힘보다 사회의 구조를 결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촌장도 시대와 구조에 희생된 피해자다. 혼돈의 시대에, 생존을 위해 인간성을 잃어가는 한 사람으로. 물론 그런 촌장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렇게 그를 변호하기 시작하면 결국 일제강점기에 벌어졌던 추악한 일들도 빠져나갈 구멍을 하나 얻게 되는 셈이니까. 단 그 혼란한 시대에 '권력'을 얻거나 그 힘 아래서 안전을 지키고 싶다면, 일본이나 미국이나 소련이 원하는 방식으로 변해가야만 한다.
희생자 우룡은 이제 다시 약속한다. "셈은 셈이지" 그리고는 사라졌던 쥐들을 부활시켜 마을을 파멸시킨다. 우룡은 결국 두 가지 약속을 모두 지킨다.
깨어진 약속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서, 결과는 쉽게 담보할 수 없다. 아들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도 처음부터 실패의 위험을 안고 시작했다. ((우룡이 손에 쥐고 있던 미국인의 쪽지는 의사의 주소가 아니라 '욕(yellow monkey, kiss my ass)'이었다.)) 서울에 간다고 아들의 병이 나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촌장의 약속이 지켜졌다면 그런식으로 아들과 이별하지는 않았다. 약속의 이행 여부를 떠나서 결과는 같은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룡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아주 달랐을 것이다. 물론 아들도 그렇다. 꼭 살려주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이 비록 지켜지지 않았지만, 아들은 그래도 조금 더 편안히 눈을 감지 않았을까.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촌장이 깨뜨리면서 이 영화는 '판타지'에서 '호러'로 급격하게 기운다.
사라지고 있는 아이들
촌장은 그렇게 마을을 지키면 모두가 안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마을 사람들도 촌장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이 그래도 가장 나은 방법이라고 여겼을 거다. 의심을 접어버리고 비밀은 그냥 비밀로 남겨두는 편이 나아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서 너무 많은 비밀을 만들고 살면, 그 비밀은 점점 영혼을 갉아먹는다. 마치 영화 초반에 평화로워 보이던 마을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어둡고 습해지는 것처럼.
눈빛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믿음이 사라지고 희망이 보장되지 않은 사람의 눈빛은 보통 초점이 없다. 무언가를 바라 보는 것 같지만 도대체 뭘 바라보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수가 없다. 그런데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빛에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촌장의 아들이 그렇다. 아버지의 명을 위해서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그의 눈빛은 초점이 없고 흐리멍텅하다. 말 그대로 생기가 사라진 눈빛은 외압에 의해서 '희망'을 박탈 당했을때도 나타나고, 절대적인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서 스스로 내면의 '나'를 포기했을때도 나타난다.
이러한 눈빛이 많이 보이는 사회는 그래서 위험하다. 약속의 가치가 떨어지고 신뢰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약속의 중요성을 말해주지만 정작 어른들이 그 약속을 깨어 버리고 있는 불편한 진실. 우리의 아이들도 어디선가 계속 사라지고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어른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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