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죽었다
총기사고로 아들을 잃은 샘은 모든 커리어를 뒤로하고 유령처럼 희미하게 사라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남긴 유품이 전달된다. 거기서 아들의 음악 데모 테이프를 발견하고,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는 그 노래를 무대 위에 올라가 부르게 된다. 그 자리에 있던 쿠엔틴은 그 음악을 듣고 감동해 샘을 설득하고, 그는 휘말리듯 ‘밴드’를 결성한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들은 더 큰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Rudderless(방향을 잃은)
아들의 죽음을 극복해 가는 감동적인 스토리는 새로운 진실이 등장하며 갑자기 뒤틀리기 시작한다. 샘은 사실 가해자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 순간, 아름다운 음악 영화는 갑자기 깊고 어두운 심연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피해자라는 연민의 안개가 걷히면서, 우린 고민이 된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들을 잃었잖아. 샘도 피해자라고.”
“하지만 그 아들이 죽인 친구들은....... 남은 가족들이 겪는 고통도 생각해야지.”
“아버지가 한 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
샘은 아들을 잃고 요트에 살았다. 물론 항구에 묶여 있는 요트는 흘러갈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삶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 채 바다 위를 표류하는 불안한 신세였다. 영화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밴드의 이름인 ‘러덜리스’는 전체 이야기의 방향을 설명하는 듯하다. 충격이 잦아들고 난 후에도 반복되는 죄책감 때문에 샘은 방향을 쉽게 정할 수 없었다. 어디로 흘러갈지.
함께 노래할 수 있다면
아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 부르며 이미 흘러간 시간과 대화하던 아버지에게 밴드는 잠깐이지만 정착할 수 있었던 항구와 같았다. 노래의 진실을 모르는 아들 또래의 멤버들과 호흡하며 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잠시라도 어딘가에 마음을 두고 머무를 수 있어 행복했을까. 아니면 곧 다시 표류하게 될 운명을 느끼며 슬픔에 젖었을까.
모든 사실이 알려지고 마지막으로 무대에 혼자 오른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2년 전 총기사고를 일으킨 살인자임을 밝히고, 다시 한 번 무대 위에서 아들이 남긴 노래를 같이 부른다. 비난이 섞인 호기심 속에서 그는 나지막이 아들에게 노래한다.
What is lost can be replaced. (잃어버린 것은 회복될 수 있어)
What is gone is not forgotten. (떠난 것도 잊히지 않아)
I wish you were here to sing along. (네가 여기 곁에서 함께 노래할 수만 있다면)
My son. My son. My son. My son (내 아들아)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안고 후회하며 아파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남긴 말을 믿고 싶다.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회복될 수 있다는 그 믿음을. 하지만 조건이 있다. “네가 여기 곁에서 함께 노래할 수 있다면.”
상상 속에선 가능한 일, 그래서 이 노래의 가사는 희망이 담겨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깊은 절망을 담고 있다. 아마 그의 배는 또 한 번 방향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또 표류할 것이다.
그래도 흘러간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 우린 그 후에 남아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우린 먼저 가해자와 피해자를 찾고,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원인을 찾는다. 남은 자들은 당연히 떠난 자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 싶어 발버둥 친다. 물론 모든 일이 노력한 만큼 풀리지는 않는다. 이유는 물론 심지어 가해자가 누군지조차 못 찾는 경우도 허다하다. 왜 그랬는지 이유라도 알면 조금이라도 나을까. 그것조차 선택할 수 없으면 어떻게 마음을 다시 잡아야 하나.
우리 인생은 그렇게 계속 흘러간다. 그런 상태를 정확히 표현해주는 단어가 바로 ‘Rudderless’다. 아무리 아들이 살인자라도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죄의 무게를 같이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이 또 말한다. 당신의 아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를 죽였다고. 절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아버지는 조용히 숨 쉬듯 고백한다.
“알아. 하지만 그래도 내 아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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