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일이 너무 많다. 또? 할 새도 없이 또 다른 일이 터진다. 장기밀매도 이제는 우리가 느끼는 진실의 무게와 관계없이, 어느새 희미한 실체를 가지고 옆에 와 있는 기분이다. 솔직히 중국어 간판만 보이는 구로구 뒷골목이 좀 으스스해 보이더라. 실체가 딱 드러나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피부로 와닿는 두려움을 이성으로 떨쳐내기가 어려워서 그렇다. 최근 10년 간 가장 엽기적인 사건 중 하나인 '세모자사건'도 그렇다.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이 일을 다루기 전만 해도 많은 이들이 세모자의 편에 서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악의 목사 순위가 바뀌려고 할 때쯤 다행스럽게(?) 진실의 문이 열렸다. 예전에는 "진짜 말도 안 된다", "웃기고 있네", 하며 그냥 지나쳤을 일들을 요새는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 어느새 그렇게 돼버렸다.
재벌가의 아들이 임금을 못 받고 억울하게 계약이 해지된 노동자를 데려다가 건달 같은 현장 관리자와 한 판 붙게 한다. 그것도 억울하게 이렇게 끌려와서 수치를 당하는 아버지의 아들 앞에서. 영화인 듯 영화 아닌 현실 같은 설정. 이제 이런 설정은 별 거부감 없이 몰입할 수 있는 내성이 생겨 버렸다. 그리고 극의 설정이 피부로 와 닿을수록 '징악'은 훨씬 통쾌하다.
예전에 영화 '아저씨'를 보면서, "저 아저씨처럼 특수부대 출신이 아니면 저 상황에서 어찌해야 하나"할까 생각했다. 극 중 원빈처럼 머리를 깎아도 저런 능력은 생기지 않을 텐데. 내가 그럴 능력이 없다면 반대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의 '아저씨'는 존재할까. '아저씨'에서 원빈이 맡았던, 그리고 '베테랑'에서 황정민이 맡았던 정의로운 존재가 내 옆에도 있는 것일까. 억울하게 계약을 종료당하고,, 그나마 정당하게 일한 보수마저도 받기 힘들 때, 국가는 나를 위해 권력의 사슬을 끊을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최소한 이 영화에서는 그 억울함을 풀어줄 정의로운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그게 아주 큰 흥행요소였다.
영화는 영화다. 결국 모든 요소들이 그럴듯하게 어울려야 좋은 스토리라는 소리를 듣는다. 개연성이 보장되어야 현실의 느낌을 살리지만, 그 현실은 결국은 조작된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는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이 된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에서 오히려 비현실성을 느끼기도 하고, 반대로 비현실적인 것에서 현실성을 느끼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현실성은 진짜 현실에서 느끼는 그것이 아닌, 우리가 편안하게 느끼는 그것이다. 그래서 극 중 갈등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야,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현실적으로만 그리면 너무 불편하다. 물론 대부분의 흥행영화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가장 편안한 거리를 찾아야만 그 영화가 관객에게 편안히 다가갈 수 있으니까.
'베테랑'을 통해 보면, 서도철 형사(황정민 역)의 출현이 이 거리감을 적당히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서도철의 정의로운 여정이 없었다면, 많이들 불편해했을 거다.. 표면적으로 그 노동자는 자살해 버린 것이 되고, 그 기업은 그럼에도 그 노동자와 가족을 잘 보살핀 것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권력의 사슬은 전혀 풀리지 않았고, 관객은 진실을 알기에 답답하다. 다행스럽게, '베테랑'에는 서도철 형사가 있다. 하지만 그를 보며 통쾌함을 느끼고 돌아가는 길에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누군가는 서도철 형사가 영화 안에서 보여준 모습 안에 그냥 머물러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게 맞는 거니까. 극 중 대사처럼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있는 게 형사니까. 그걸 지키며 사는 공무원들이 더 잘 진급하고 그걸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정치짓' 하는 사람들보다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지. 그게 맞는 거지. 그럼에도 당연한 일을 비현실적으로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은 뭘까.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대한민국이라는 바다를 표류하는 대한민국 난민들이 있다. 그들은 떠날 수도 없고 떠날 방법도 알지 못한다. 법이 보호해줄 것 같지만, 그 법도 돈과 시간이 든다.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지면, 억울함은 나중 문제다. 영화 속 한 노동자(정웅인 역)처럼, 밀린 몇 백만 원만 빨리 해결해줘도 갑자기 해지당한 계약의 억울함 쯤 묻어두겠는데, 가진 자들은 그 돈이 너무 적어서인지 당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더 가진 자의 속은 왜 이렇게 좁은지. 없어도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호의는 몰라주고 자신들의 악한 꾀만 쫓는다. 돈은 많아도 제대로 쓸 줄을 모른다. 정말 '가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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