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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리뷰 / 오베라는 남자 / 다시, 이 도시를 그리다

by 낭만리뷰어 2021.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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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가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일부 마니아만 기억하는 <심장이 뛴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2013년에 시작해 1년을 못 채우고 막을 내렸는데, 연예인들이 실제로 소방대원이 돼서 현장에 출동하고 일을 수습하는 모습들을 비교적 담백한 화법으로 담아냈었다. 예능이었지만, 마치 다큐처럼 이야기를 풀어줄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사회의 꾸며지지 않은 모습이 마치 '날 것'처럼 드러날 때가 많았다. 마약에 취한 사람, 난동을 치는 주취자, 자살 시도하는 안타까운 장면까지. 어딘가 그늘진 곳에 감춰져 있어서 우리가 그냥 지나치기 쉬었던 신음소리를 그래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도시의 차가운 비극들을.   

 

 영화 '오베라는 남자'

 

  빈틈없이 성실했던 오베가 회사에서 잘린 날, 오베는 죽기로 결심한다. 드디어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마지막을 준비한다. 막을 사람도 없고, 모든 게 잘 준비되었다. 드디어 목을 매기 위해서 줄 앞에 선 오베, 그러나.......

 

 오베라는 남자는 어떤 사람인가.

 

- 키가 크고 무뚝뚝하다.

- 홀로 살아가는 무표정한 노인이다.  

- 자전거가 지정된 장소에 주차되어 있지 않으면, 들어다가 창고에 집어넣는다.

- 누군가 차례를 지키지 않으면 소리치며 혼을 낸다.

- 자동차는 무조건 ‘사브’ 브랜드만 탄다.

- 아내가 묻힌 묘지를 자주 찾고, 아내를 항상 그리워한다.  

- 통행금지를 지키지 않고 동네에 진입하는 차가 있으면 그 앞을 막아선다.

- 아침마다 꼭 동네를 순찰한다.

 

 

  이러한 모습 뒤에는, 그가 살아온 인생이 녹아있고 정렬돼 있다. 사랑했던 이들을 사고로 잃은 슬픔.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 아니 그저 살아가기 위해서, 그는 원칙을 지키면서 괴팍하게 자신을 포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어떤 방해나 슬픔이 와도, 그를 사랑했던 아버지와 아내가 기억하는 그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나가고 싶었는지도.

 

   80년대만 해도 동네에 꼭 그런 어르신들이 있었다. 남 일도 제 일처럼 여기면서, 기쁜 일, 슬픈 일 다 따라다니며 참견하던 정의의 '꼰대'. 답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동네의 1차 보호막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그때는 골목 어느 집에 들어가도 밥 한 끼 얻어먹는 건 쉬운 일이었다. 아이들끼리 집에 모여 부모님이 준 돈으로 무엇을 시켜 먹는 것보다,누군가의 어머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 위에 숟가락 하나 올리고 함께 하는 게 더 흔한 일이었다. 밥 냄새가, 사람 사는 냄새가 넘쳤기에, 골목에는 항상 ‘정’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는 어두운 밤 골목이 꼭 차갑게 만 느껴지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신 안심귀가 보호 등이 쓸쓸히 골목을 비추고 있다.  

 

죽음 앞에 서 있던 오베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당장은 죽은 아내에게 갈 수 없었다. 그가 이 세상을 등지려고 할 때마다 귀찮게 등장하는 이웃들이 계속해서 오베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특히 이웃집에 이사 온 이란인 부부는 더욱 그랬다. 만삭의 몸인 파르바네는 계속해서 오베를 집 밖으로 끌어내었다. 오베는 불평했지만, 항상 그들을 돕고 있었다. 딸 뻘인 그녀는 마치 오베의 상황을 아는 듯, 고집불통인 그의 인생 속으로 자꾸 들어갔다. 결국 그의 계획은 이웃들의 방해 아닌 방해로 실패하게 되었다.

 

 오베라는 인물의 한 면만 보면, 괴팍한 노인데가 보인다. 그저 고집불통 늙은이, 혹은 꼰대처럼. 영화는 이런 인물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인생의 중요한 지점을 여행하듯이 보여주고, 겉모습 때문에 감춰져 있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 마음을 느낀 우리는 다시 주변을 바라보며 꿈꾼다. 낯설고 차갑게 느껴지는 이 도시가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마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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