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블랙, 그는 ‘진짜’였다.
2017년 ‘무한도전’에서 보여준 그의 매력을 누가 잊겠는가. 출국을 4시간 앞두고 촬영했다는 방영분에서 타오르던 그의 열정은 최소한 그랬다. 영화 ‘쿵푸팬더 3’ 홍보를 위한 이벤트성 출연이었지만,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내던지며 홍보한 내한스타는 없었던 것 같다. 스타킹을 쓴 채로 촛불을 끄고, 닭싸움을 하던 중에 다리가 풀리기도 하고, 물로 채운 축구공을 헤딩하면서, 제대로 망가졌다. 그런 그가 음악적으로 빛나는 순간이 있었으니, 헤드폰을 쓰고 한국대중가요를 즉흥적으로 따라 부르던 순간이었다. 트로트 ‘백세인생’부터 아이돌음악까지 얼마나 느낌을 잘 살려서 부르던지. 이런 그의 음악적 재능을 보며 떠오르는 영화가 있으니, 그건 바로 ‘스쿨 오브 락’이다.
조그만 클럽, 공연중 흥에 겨워 윗옷을 벗어 제치고 스테이지 다이빙(*로커가 공연중 무대 아래로 뛰어내리는 퍼포먼스)을 해도 관객은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차가운 바닥에 얼굴을 박고 그대로 쓰러져있는 모습이 바로 그의 현실. 배도 좀 나오고, 외모도 요샛말로 '훈훈'하지 않다. 같은 짓을 해도 손해를 볼 것만 같은 주인공 듀이(잭 블랙)는 심지어 눈치도 없다. 무명밴드 바닥에서도 쫓겨날 수 밖에 없는 현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런 듀이의 캐릭터를 압축해서 여과없이 보여준다. 마치 "오늘의 주인공은 그저 그런 삼류, b급이에요"라고 알려주고 시작하는 것 처럼.
어느 날 친구대신 전화를 받은 듀이. 돈이 궁하던 그는 사립초등학교 대리 교사 주급을 듣고서는 친구 행세를 하기로 한다. 아이들과 만나게 된 동기는 삼류였지만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과 락밴드를 만들고 경연대회까지 나가는 과정은 재치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사립명문초등학교라는 이른바 '일류'의 판에 '삼류'가 끼어서 제대로 '한 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삼류감성만이 이끌 수 있는 일종의 변주를 들려준달까. 그리고 그 변주의 시작은 세상을 지배하는 '잘난놈'들에 대한 저항이다.
듀이는 아이들에게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국 세상은 잘난 놈들이 지배하게 되어 있어“, "포기해”
듀이에 의하면, 권력을 가지고 있는 모든 놈들이 다 '잘난 놈'이다. 정치인도 교장도 다 잘난놈이다. 그들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주범이다. 옛날에는 락앤롤뮤직으로 그런 '잘난 놈'들에게 저항했지만, 지금은 그런 정신이 다 죽었다. 잘난 놈들이 MTV같은 방송으로 락을 다 망쳐버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것이 그의 첫 레슨이었다. 잭블랙의 익살스런 표정연기 때문에 이 진지한 대사가 묻히기는 했지만, 연기의 아우라를 걷고 나면 마주치는 따끔한 진실이 있다. 잘난 놈들에 대한 저항정신. 그럼 무엇으로 저항할 것인가.
BREAKING THE LAW!
"오늘도 용돈을 못 받아서 열받네", "저리가!“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가야 하는 학생들에게 듀이는 노래한다. 락음악은 잘난 놈들에게 화를 내는 것이라고.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의 노래 제목처럼 락의 정신은 규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이 노래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미술관에 걸린 클래식한 작품 같다면, '스쿨 오브 락'은 공공시설에 그려진 그리피티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스쿨 오브 락'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이 더 '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웃음과 함께 아이들의 저항이 시작된다.
"우리는 만점을 받지. 하지만 바보가 된 기분“
만점을 받으라고 해서 받았지만, 정작 자신은 기쁘지 않다.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의 소리를 락음악에 맡겨 내뱉기 시작한다. 듀이는 락음악을 알려준다는 생각보다 어쩌면 락정신에 아이들이 눈뜨기를 원했을지 모른다. 부모의 통제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듀이의 표정에서 이를 읽어낼 수 있다. 듀이는 비록 교육자는 아니었을지라도 긴장을 풀고 다가갈 수 있는 동네형이다. 도대체 뭘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그런 동네형. 루저냄새는 나지만, 자신의 철학이 있고 부담없는 감성이 흘러서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그런 형. 하지만 A급 세계에서는 들을 수 없는 비밀을 한 두개 알고 있는, 그래서 진짜 솔직해질수 있는 상대다. 그게 바로 b급 감성이고, 그 감성에선 '찐맛'이 나온다.
모두가 A급으로 올라갈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A급 저항은 모두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저항을 돕는 감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b급 감성, 즉 '병맛'이다. 누구에게나 있어서 꺼내 사용하기가 좋고, 또 금방 퍼진다. 그런 감성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과 오래 있어 봤나. 진짜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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