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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리뷰

추억의 명곡 /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 / 찌들어 있는 우리를 구하는 노래

by 낭만리뷰어 2022. 1. 4.

낭만에 대하여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시련의 달콤함이야 잊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예전 다방은 다양한 삶이 교차하는 마치 큰 사거리 같았다. 일이 있어서, 혹은 없어서, 또는 일을 찾아서, 아니면 일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그곳에 모였다. 담배도 마음껏 필 수 있고, 큰 성냥갑에 있는 성냥개비로 탑을 쌓아도 방해를 받지 않는 곳. 하루 종일 음악도 들을 수 있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노래를 부른 최백호씨는 먹고살기 위해 화가의 꿈을 포기하고 노래를 시작했다 한다. 그 이후에 성공과 추락을 경험하다가, 마흔 중반에 이 노래를 불러 자신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가 말한 이 곡의 성공 이유는 단순하다. 

 

"삶이 낭만적이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게 못 사니까 낭만에 대한 갈증이 있는 거다."

 

낭만적으로 사는 사람이 많았다면, 이 노래는 그렇게 주목을 못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가수의 목소리에 매료되어서 낭만의 감정을 느낄지는 몰라도, 그가 말한 낭만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무언가'이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것을 다 낭만에 대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낭만의 부재는 현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치는 건 틀림없다. 

 

낭만의 '깐부'는 여유인데, 특히 이 곳, 우리네 삶에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여유를 즐기는 것마저 전투적이지 않나. 한 곳이라도 더 둘러보려고 재빨리 장소를 이동하고, 한 장이라도 더 건지려고 계속 화면을 보며 사진을 찍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이 노래는 낭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재의 감정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그 감정은 다소 시리기도 하지만, 살아있음을 느끼도록 만들기 충분하다. 많은 노래들이 사랑과 이별의 한정된 영역 안에서 놀 때, 이 노래는 낭만의 부재를 꼬집으며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억지스럽지 않게. 

 

시린 감정 뒤에 오는 공백은 우리를 친절하게 만져준다. 짙든 옅든 색소폰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곳이 꼭 분위기 있는 장소일 필요는 없다. 타인의 시선을 잠시 피해, 내 안의 소리를 따라가 보자.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무엇이었나. 잊고 있던 사람, 사랑은 없나. 잠시 멈추면 여기저기 묻어있는 낭만이 보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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